글쓴이:윤정구님 | 날짜:2005-05-31
노을 바람 침묵
― 故 김영갑 寫伯 영전에
노을이 된 뒤에야 그대를 만나네
바람이 된 뒤에야 편지를 쓰네
그대 영원한 침묵으로 돌아간 다음에야
긴 침묵에 젖은 쓴 편지를 띄우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사진만으로도
그대 얼마나 괴롭고 행복한지 짐작했네만
한번 만날 시간도 허락하지 않은 채
이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네
두모악에 흰 달 떠오른 어느 밤중
캄캄한 우주의 한가운데
귀신처럼 둘이 마주앉아서 두런두런
슬프고 기쁜 세상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키득키득 허튼 놈들 웃어주고 싶었는데
그대는 가고 나 홀로 허공을 보네
변함없는 신의 약속처럼 노을 빛나고
바람 불고 나무 흔들리는
그대가 사랑한 세상을 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