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어리연님 | 날짜:2003-08-25
소감
순간과 영원, 여기와 저 너머, 실체와 환상......
아이적부터 이런 상대적인 개념들을 화해시키지 못해 안달을 하곤 했습니다.
특히 순간과 영원에 대한 대립과 불화가 만만치 않았지요.
갤러리에서 한 흑백 사진을 보는 순간 그런 것이 허물어졌습니다.
순간과 영원이 마냥 대적하며 겨루기를 하는 상대가 아니었구나.
한없이 약자인줄로만 알았던 순간이 영원보다 세구나.
그동안 시달렸던 의문에서 풀려나 잠시 “삽시간의 황홀”에
빠졌으나 회랑을 한 바퀴 돌고 나왔을 때는 어떤 예감에 몸을 떨어야 했습니다.
당분간은 어떤 책도, 어떤 사람에게서도 감동을 받지 못할 거란 예감.
하나의 문이 열리고 또 하나의 문이 닫히는 소리.
회전문에 갇혀 어디로 빠져나가야 할지 모르는 당혹감 마저.
사진 한 장 한 장 마다에서 시간에 대한 데이터가 감지되어 왔습니다.
풀밭에서 혹은 바닷가에서 오래 서성거렸을 작가의 시간.
너무나 치열해서 차라리 별난 사람이구나 라면서 속 편하게 외면해버리고 싶은 시간.
지금껏 약자라고 소외시키며 짓밟아왔던 것들의 당당한 웃음소리와
강자와 승리자를 자처하는 우리 사회의 주류를 향한 조소까지.
김영갑 갤러리는 저에게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일행들과 하루 어울리는 코스로 생각없이 들렸다가 호되게 당하고 왔습니다.
바람속에서 누군가에게 머리채를 휘어잡힌 듯한 느낌.
그것은 제 자신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여태껏 벗지 못했던 가식과 허영의 껍데기도 날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참회하고 용서를 받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내부의 성전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 무릎을 끓게 하였습니다.
영혼의 정토. 자기반성과 자기정화의 꼭지점으로 나를 몰아세우던 곳.
다녀온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말을 하고자 하면 이미 뜻을 잃는다고 하였는데... 동박새처럼 잘도 재잘거렸습니다.
제대로 살아야 겠다는 각오를 하면서 선생님에 대한 감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오랜 시간 제주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드리고, 갤러리를 지어 관람의 기회를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