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사진…제2 고향 제주에 ‘예술의 섬’ 만들다
(7) 제주도립김창열 미술관·김영갑갤러리 두모악
●김창열미술관
한국추상미술 거장 2016년 개관
回(회)자 모양 미술관 자체 작품
한국전 피해 제주 1년 6개월 머물러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억새·오름 등 매료돼 섬에 장착
20년간 제주 풍광 앵글에 담아
폐교 주변 돌·토우 등 볼거리 풍성
이중섭, 김창열, 김영갑, 이왈종….
‘내로라’ 하는 이들 작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타 지역 출신이지만 제주도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평안남도 출신인 서양화가 이중섭(1916~1956)은 6·25 한국전쟁 당시 제주로 남하해 1년간 서귀포 칠십리에서 살았고, ‘물방울화가’ 김창열(1929~2021) 역시 전쟁을 피해 1년 6개월 이곳에 머물렀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사진작가 김영갑(1957~2005)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돼 1985년 섬에 둥지를 틀었고, 경기도 화성 출신인 이왈종(76) 화백도 1990년 대 초 서귀포에 내려와 ‘제주생활의 중도’ 시리즈 작업을 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비록 세 사람은 세상을 떠났지만 제주도에 가면 이들의 예술혼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중섭미술관과 초가, 제주도립김창열 미술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덕분이다. 이들 미술관은 차별화된 컬렉션과 프로그램으로 제주의 문화명소이자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김영갑갤러리두모악 입구. ‘외진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시선을 끈다.
‘가장 제주다운 곳을 보고 싶다면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으로 가라.’ 한번쯤 이 곳을 다녀간 이라면 공감할 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한라산의 옛 이름인 ‘두모악’은 옛 삼달초교를 개조해 20여 년간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앵글에 담아온 사진작가 김영갑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이다.
그래서일까.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로 137·이하 김영갑 갤러리)은 방문객에게 색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외진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갤러리에 들어선 순간, 주황색 모자와 원피스 차림의 조각상에 새겨진 말 한마디가 먼 걸음을 한 방문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싼다. 폐교 주변을 둘러싼 꽃과 나무, 구멍이 숭숭 뚫린 검정색 돌,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순박한 인상의 토우까지 흥미로운 볼거리로 가득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김영갑 갤러리의 과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공간과 자료들이 꾸며져 있다. 가장 먼저 폐교에 온기를 불어 넣었던 고 김영갑(1957~2005) 사진작가의 유품전시실이 나온다. 그의 손때가 묻은 여러 대의 카메라와 책장을 가득 메운 책, 각별한 우정을 나눴던 도예가 김숙자의 토우들이 그대로 보전돼 있다.
그 옆에는 그의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실과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작가의 열정이 묻어나는 대형 흑백사진이 자리하고 있다. 사실, 김영갑갤러리가 특별한 건 그의 평범치 않은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다.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 내리며 사진작업을 하던 중 억새와 오름, 바람 등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돼 1985년 아예 섬에 정착했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과 고구마로 허기를 달래며 열정과 영혼을 바쳐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카메라에 담아냈다.
옛 삼달초교를 리모델링한 김영갑갤러리 전경. 20년간 제주의 오름 등을 앵글에 담은 김영갑 작가가 손수 일군 야외정원이 갤러리를 감싸고 있다.
수많은 제주도의 풍경 사진을 전시할 공간을 물색하던 그는 허물어져가던 삼달분교를 구입해 자신만의 갤러리로 꾸미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후 청천벽력과도 같은 루게릭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됐다. 3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기 위해 손수 돌과 나무를 심고 폐교를 리모델링한 끝에 마침내 지난 2002년 갤러리를 개관했다.
갤러리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메인전시관인 ‘두모악관’과 ‘하날 오름관’을 만날 수 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거친 제주의 오름과 들판을 누비며 앵글에 담은 작품들은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모습과 쉽게 드러나지 않는 제주의 속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갤러리 뒷편에는 과거 숙직실을 산뜻하게 단장한 무인카페와 오래된 장독들이 시선을 끈다. 특히 투병생활 중에서도 손수 일군 야외 정원은 방문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명상의 공간으로 인기가 높다. 정성을 들여 가꿨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고 자연스러운 풍경이 마치 그의 작품을 보고 있는 듯 하다.
제주=박진현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