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김영갑 갤러리
제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가 ‘김영갑 갤러리’이다. 세상일을 모두 뒤로한 채 중산간에 파묻혀 제주 사진만 찍은 작가 김영갑. 그가 생전에 작업실로 전시실로 가꾸며 쓰던 폐교가 아름다운 갤러리로 변신한 곳이다. 처음 그곳에 걸린 사진들을 봤을 때 나는 묘한 충격을 받았다. 그저 멋진 경치 이상의 울림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게 뭘까? 사진집과 수필집을 사서 되풀이 보며 나는 그걸 찾으려고 애썼다.
최근 갤러리를 다시 찾아 작품들을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바람과 구름과 빛이 만들어내는 천변만화의 하늘의 얼굴. 그는 그것들을 포획하고 있었다. 고집스럽게 한 자리에 버티고 서서 시시각각 사시사철 변하는 하늘을 계속 잡아들이고 있었다. 하늘이 그 집요함에 잠깐 손을 들어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속살을 슬쩍슬쩍 보여준 것이 그의 사진이었다. 형체 없는 바람, 머무르지 않는 구름과 빛, 신의 영역인 하늘…. 김영갑은 그것들을 미친 듯 사랑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 게 아닐까. 지상의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그 불가능한 합일이 순간, 이루어진 듯 보이는 풍경들. 그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다. 그 순간을 잡아낸 작가의 깊은 희열이 느껴진다.
작가에게 루게릭병이 찾아온다. 몸이 점점 굳어져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병. 원인도 치료 방법도 모른다는데, 어쩐지 이 작가가 그 병을 얻은 원인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잡히지 않는 바람과 구름과 빛, 하늘의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을 기어이 사로잡아 붙박아 둔 대가인 건 아닐까. 흑백사진 속 젊은 김영갑은 마치 그런 자신의 운명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아득한 얼굴이다. 굳어져가는 몸으로 꾸몄다는 정원은 그의 마지막 숨결인 듯 정갈하고 고요하다. 곳곳에 놓인 무심한 얼굴의 토우들 속에 그 숨결이 하나씩 들어 있는 것 같다. 그는 하늘로 올라간 게 아니라 이 땅에 이렇게 붙박여 있는 걸까. 아니, 하늘 한 조각을 이곳에 사로잡아다 놓은 것일까. 앞으로 세상에서 잠시 두 발을 떼고 싶을 때면 이 갤러리를 찾을 일이다.
글 김서정(동화작가, 평론가)
삽화 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