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악
[문화웹진 채널예스 2014/07/31] 제주를 사랑한 예술가, 이중섭과 김영갑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제주 여행의 필수 코스 서귀포 이중섭거리,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7월에 다녀온 ‘책 속 그곳’ 다섯 번째 장소는 제주. 20년 전까지만 해도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았지만,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주말에라도 떠날 수 있는 가까운 여행지가 되었다. 제주는 2011년 ‘세계 7대 자연경관지’로 선정되면서 해외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꾸준히 늘고 있다. 시끌벅적한 여행보다 한적한 여행을 계획한다면, 제주를 사랑한 예술가 이중섭과 김영갑의 발자취를 따라가보는 건 어떨까. 여행 가이드책은 버리고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품고 제주를 거닐어보자. 서귀포시에 자리한 이중섭미술관과 이중섭거리,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못지않은 특별한 기억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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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매료된 사진가, 김영갑
제주여행 중에 고요한 시간을 갖고 싶다면, 서귀포시 성산읍에 자리한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폐교를 미술관으로 꾸민 김영갑갤러리는 2002년 개관,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으로 지정됐을 만큼 인기가 얻고 있다. 제주 올레길 3코스를 돌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김영갑갤러리는 한적한 동네 속에 자연을 품은 모습이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명칭이다.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영갑은 1982년부터 제주도에서 사진 작업을 시작, 1985년에 제주도에 정착했다. 신내림 받은 무녀처럼 섬을 헤집고 다니면 제주의 얼과 속살을 카메라로 받아 적은 김영갑. 그는 용눈이 오름 흐벅진 굼부리에 들어가서는 카메라를 놓고 하루 종일 바람과 살았다. 필름에 미처 댕기머리를 한 채로 돌아다니는 김영갑을 보고, 사람들은 간첩으로 오인해 경찰을 부르기도 하고 가수로 착각해 사인 종이를 내밀기도 했다.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린 김영갑. 어느 날부턴가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허리에 통증이 찾아왔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결국 루게릭 병을 진단 받은 그는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다시 몸을 움직여 사진 갤러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곳이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이다.

“삶에 지치고 여유 없는 일상에 쫓기는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서 와서 느끼라고, 이제까지의 모든 삿된 욕망과 껍데기뿐인 허울은 벗어 던지라고, 두 눈 크게 뜨지 않으면 놓쳐버릴 삽시간의 환상에 빠져보라고 손짓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주의 진정성을, 제주의 진짜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넉넉한 마음입니다. 그것이면 족합니다.“  -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을 지으며, 김영갑

 

 

김영갑갤러리에는 20여 년간 제주도만을 작품 속에 담아온 김영갑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내부 공간의 특이한 점은 전시관 바닥에 돌이 깔려 있어, 마치 방문객이 오름에 올라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내부 전시장인 ‘두모악관’, ‘하날오름관’에서는 제주의 오름과 중산간, 마라도, 해녀 등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김영갑이 생전에 사무실로 사용했던 곳은 ‘유품전시실’로 꾸며져 김영갑이 평소에 보던 책들과 평생을 함께한 카메라가 전시되어 있고, 영상실에는 작품 활동을 왕성히 했던 김영갑의 젊은 시절 모습을 화면과 사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김영갑이 투병생활에 손수 꾸민 야외정원은 마치 수목원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2009년에 오픈한 ‘두모악 무인 찻집’은 방문객들의 쉼터로 사랑 받고 있다. 무인 찻집에는 수십 권의 방명록이 갤러리의 흔적을 담고 있는데, 김영갑의 작품 못지않은 감성이 깃들어 있다.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궁금해 사진가가 되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다. 대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하늘과 땅의 오묘한 조화를 깨달았다.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평화와 고요가 내 사진 안에 있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나는 그 사진들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다운 삶을 여한 없이 보고 느꼈다. 이제 그 아름다움이 내 영혼을 평화롭게 해줄 거라고 믿는다.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 지금, 나의 하루는 평화롭다. ( 『 그 섬에 내가 있었네』 28~29쪽)

 

김영갑은 섬의 오지를 찾아 다니며 초가집, 돌담, 팽나무, 노인, 아이, 해안 마을, 중산간 마을, 초원, 바다. 오름을 닥치는 대로 필름에 담았다. 중산간 마을 외딴 집에서 외부와 접촉을 끊고 순수 자연인으로서 사진 작업에만 몰두한 김영갑. 사진만을 짝사랑하며 평범한 삶의 방식을 거부해온 그를 두고, 사람들은 부러워하기도 기인이라 여기기도 했다. 2005년 5월 29일, 김영갑은 그가 손수 만든 두모악 갤러리에서 고이 잠들었고, 그의 뼈는 두모악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섬을 사랑했고 영원히 섬에서 머물러 있는 김영갑은 두모악을 찾은 이들을 마음으로 반기고 있다.

 

김영갑의 작품집은 1995년부터 여러 출판사를 통해 출간됐다. 특히 김영갑의 사진 달력은 많은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2004년에 초판이 나온 김영갑의 에세이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2007년 김영갑의 2주기를 맞아 특별판이 제작됐고, 지난해 다시 개정판으로 재출간 됐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시인 이생진과 함께 집필한 포토 에세이 『숲 속의 사랑』은 김영갑 추기 5기를 맞아 2010년에 출간됐다. 또한 김영갑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에 출간된 『김영갑 1957-2005』는 그가 파노라마 작업을 시작한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찍은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다.

 


엄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