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악
[주간조선 2012/08/13] 바람에 홀려 두모악의 전설이 되다

제주의 사진가 김영갑

 


▲ 바람이 지나간 후 중산간 지역에서 잡은 제주의 하늘. photo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내 안에서 부는 바람을 어쩌지 못해 전국을 떠돌다 바람 타는 섬, 제주에 정착했다. 제주의 바람에 홀려 20년 동안 바람을 쫓아다녔다. 동서남북, 섬 중의 섬. 바람 지나는 길목에서 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처럼 풀처럼 시련을 온몸으로 견디며 세상을 삶을 느끼려 했다.” - 김영갑 ‘바람에 실려 보낸 이야기’ 중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제주의 모든 것을 담고 싶어 했습니다. 제주에 미친 사진가 김영갑. 찬물로 허기를 달래면서 필름을 샀고 간첩으로 오해받으면서 중산간을 헤맸습니다. 그의 카메라에는 제주의 바람과 돌과 시간이 쌓여갔지만 혹사당한 그의 몸은 병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루게릭병으로 온몸이 굳어져가면서 그는 작은 폐교에 자신의 갤러리를 만들었습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돌을 쌓고 나무를 심고 길을 만들었습니다. 2005년 5월, 목숨 바쳐 만든 갤러리 마당에 그의 뼛가루가 뿌려졌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437-5,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이 문을 열고 10년이 됐습니다. 
   
개관 10주년을 기념해서 ‘바람’이라는 주제로 김영갑의 미공개 사진 30여점을 포함해 40여점의 사진이 8월 13일부터 새로 걸립니다. 갤러리 수장고에는 아직도 그의 미공개 필름 박스가 가득 쌓여 있습니다. 그의 제자인 박훈일 두모악 관장은 그가 남긴 필름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6개월째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바람’을 담은 작품들을 찾아 이번 전시에 선보입니다. 박 관장은 생전에 ‘바람’을 주제로 책을 내고 싶어 했던 스승의 뜻을 이뤄주고 싶다고 합니다. 8월 13일 갤러리 두모악 앞마당에서는 그의 친구인 토우 조각가 김숙자의 작품전과 함께 오카리나앙상블·피닉스파운데이션(독일) 공연 등 전시를 축하하는 행사가 다양하게 열립니다. 한라산의 옛 이름을 딴 갤러리 두모악의 마당에 바람이 지나가는 지금, 그 섬엔 그가 있습니다.

 

황은순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