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악
[한겨레뉴스 2006/05/29] ‘두모악’ 다시 적신 제주의 빛과 바람 노래

300명 참석 치열했던 삶 기려
추모 사진집 발간·전시회도
사진작가 김영갑 1주기 추모행사 열려

 

 “흐린 저녁 안개가 내리던 날 … 엉겅퀴꽃에 내려앉은 한마리 푸른 나비를 보았습니다.”

 

지난 28일 오후 5시. 제주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 ‘김영갑갤러리 두모악’(관장 박훈일)에서는 피아니스트 우상임(음악사랑 ‘자작나무숲’ 숲지기)씨의 차분하지만 떨리는 진행에 맞춰 지난해 5월 48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사진작가 김영갑씨의 1주기 추모행사(사진)가 열렸다.

 

김영갑갤러리 후원회가 기획한 추모식에 이어 열린 추모음악회는 300여명의 지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푸른 나비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10여년 넘게 고인과 가족처럼 지내온 김희갑(70)씨가 작곡하고 딸 수나(35·작곡가)씨가 작사한 ‘아름다운 사람이여’가 바리톤 김동언과 소프라노 탁대윤에 의해 불리어지자 장내는 고요 속에 빠져들었다.

 

1982년부터 제주의 오름과 바다, 들판 곳곳을 쫓아다니며 제주의 속살을 렌즈에 담기 위해 열정을 쏟았던 고인은 제주의 자연이 빚어내는 황홀함에 붙들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빛과 바람, 내면을 표현하려 애썼다.

 

폐교인 삼달초등학교를 임대해 사진갤러리를 만들다 2002년 갑작스레 루게릭병이 찾아들었다. 이 병은 그의 몸을 오그라들게 했고, 손에서 셔터를 누를 힘마저 앗아갔다. 그러나 그는 “치열하게 살았으니 한이 없다. 죽음을 피하지 않겠다”며 고통 속에서도 갤러리 두모악의 사진전시장과 정원을 가꾸는 데 혼을 불어넣었다.

 

이날 추모음악회는 출연진들이 모두 무료로 나왔고, ‘제주사람들’이라는 안내문을 만드는 등 지인들의 후원으로 조촐하지만, 뜻있게 이뤄졌다고 참석자들은 말했다.


특히 이날 고인의 친구였던 가수 이동원의 ‘봄날은 간다’와 바리톤 김동언이 고인에 대한 애틋한 정을 담은 ‘그리운 마음’을 열창하자 추모음악회에 참가했던 지인들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삼달리 부녀회가 다과와 국수, 김밥 등의 먹을거리를 마련해 추모객들에게 나눠주는 등 훈훈한 마을 인심을 보여줬다.

 

추모행사에 참여했던 한 지인은 “사람은 갔으나 그가 남긴 예술이 영원하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며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뜻 깊은 추모행사가 이뤄진 것을 보면 오히려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두모악은 1주기에 맞춰 고인이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95년부터 2001년까지의 대표작을 묶은 사진집 〈김영갑: 1957~2005〉를 펴냈으며, 오는 10월 말까지 추모전시회를 마련해 고인의 대표작과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물 등을 보여주고 있다.


허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