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악
[제주일보 2005/01/20] 이어도 속살 용눈이 오름을 보다.

이어도 속살 용눈이 오름을 보다.

 

"오름이 가진 내밀한 아름다움 속에는 대자연의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20여 년간 바람처럼 제주섬을 누비며 그 황홀함을 시적인 영상으로 표현해 온 '제주 사진작가'
김영갑씨(48). 그가 1월 10~15일 서울 태평로의 프레스센터 1층 서울갤러리에서 '내가 본 이어도,
1 용눈이오름' 전시회를 갖는다. 전시작은 70여 점의 미발표작으로, 용눈이오름이 빚어낸
'찰나의 매혹'을 담고 있다.

 

제주가 온통 하얗게 물든 지난 1일 갤러리 '두모악'(한라산의 옛 이름)을 찾았다. 정원을 수놓은
동자석, 토우, 돌인형, 야생화에는 백설이 살포시 내려앉아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마주한 김씨는
루게릭병(근위축성 측삭경화증) 투병으로 몸은 바싹 야위었지만 눈빛에는 맑은 영혼이 투영됐다.

 

"용눈이오름은 제주의 으뜸 속살로, 천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계절과 날씨, 관찰 각도에 따라,
그리고 언저리를 장식하는 유채, 감자, 메밀, 콩 등 농작물에 맞춰 다양한 얼굴로 변모합니다.
더욱이 마을공동목장인 오름 곳곳에는 마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화입으로 까맣게 그을리기도
하며 산담에 둘러싸인 무덤들이 올망졸망 자리하고 있습니다. 용눈이오름은 자연과 토착민이
공존하며 그 자취를 오롯이 품고 있는 가장 제주답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김씨는 용눈이 오름에 대한 애착을 들려줬다. 그는 이어 "송당.세화온천지구 개발로 인해 용눈이
오름이 파헤쳐져선 안된다"며 우려를 표한 뒤 "제주의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을 훼손하는 어리석음을
멈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말을 할 때마다 안면근육이 떨렸고 한 손으로 다른 손을 떠받쳐 글씨를 쓰고 전화를 받았다.
6년째 투병생활 중인 그는 늘 그랬듯이 제주와 사진을 향한 열정으로 육신을 지탱하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그는 의학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고 있다.

 

김씨는 '이어도 시리즈'를 꾸준히 펼쳐나갈 계획이라며 다음 주제는 '들녘의 빛'이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의 기도와 사랑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기에 나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렵니다. 모두의 사랑과 채찍이 헛되지 않도록 삶의 열정을 잃지 않으렵니다. 이번 전시가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될 것을 믿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리렵니다."

 

그는 부여 출생으로, 오름에 매료돼 1985년부터 제주에 정착했다. 1996년 옛 삼달초등학교를
임대 받아 그 곳에 살면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꾸며왔다. 16차례 개인전을 가졌고 그가
찍었던 필름을 한줄로 이으면 한라산을 수십 번 오르내릴 정도.

 

김씨는 이번 전시회를 끝내고 다시 카메라를 잡을 생각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회는 그 의지의 표현.
그래서일까. 그의 얼굴은 밝고 건강해 보였다.

 

"아직도 갈 길이 아득한데 중도에서 낙오했다고 모두들 안타까워 하지만 난 결코 멈추지
않으렵니다. 목적지를 향해 계속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많은 이들의 기도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달팽이 걸음으로, 아니 굼벵이 마냥 굴러서라도 완주하렵니다."

 

작품들은 인터넷 갤러리 두모악(www.dumoak.co.kr)에서도 볼 수 있다. 문의 (784)9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