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으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열린 아름다운 김영갑의 사진전
죽음보다 더한 육체의 고통을 보았다. 끝없는 절망의 절규를 들었다. 그리고 처절한 외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결국 보고, 듣고, 느낀 것은 바로 죽음의 고통을 이겨낸 아름다운 한 인간의 의지이며, 절망의
늪에서 건져 올린 끈질긴 예술혼이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서 피워낸 찬연한 희망의 꽃이었다.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15일까지 열리는 김영갑의 사진전 ‘내가 본 이어도’.
그곳에 가면 20여년을 사진무당으로 살아온 김영갑(48)의 분신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는
형용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뚫고 드러낸 예술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김영갑, 그는 지금 근육의 고통으로 웃음마저 빼앗긴 루게릭병 환자다. 근위축성경화증, 일명
루게릭병은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약도 없는 퇴행성 질환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통증에
시달려야하며 손가락과 발가락의 근육이 사라져 뼈만 앙상하게 남는 병이다. 발병하고 길어야
5년을 넘기기가 힘들다는 병이다. 그는 벌써 5년째다.
셔터마저 누르기 힘든 상황에서 그는 제주도의 삶이 투영된 자연을 담았다. 20여년 넘게 제주도에
미쳐 사진 작업에 몰두했다. 지독한 궁핍 속에서도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래며 사진 작업에 영혼과 열정, 그리고 젊음을 바쳤다.
그 결과물이 바로 ‘내가 본 이어도’의 69편의 사진 결과물들이다. 예술을 향한 치열함으로 육체의
고통과 궁핍함을 떨쳐내고 작업한 이어도를 비롯한 사진은 제주의 겉모습이 아닌 사람들의 내음이
배어 있고 생활이 있는 섬의 속살을 드러낸다.
그의 사진에는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긴 이미지는 누구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의 목적에 따라 사진이 어이없이 재단되고 변형되는 것을 숱하게 봐왔다. 한 장의 사진에는
사진가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는 김씨의 말의 진정성이 오롯이 살아 있다.
그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궁금해 사진가가 됐다고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아름다운 세상을
보았다고 했다. 대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하늘과 땅의 오묘한 조화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 깨달음은
순전히 그의 사진으로 표출됐다.
김영갑씨는 3년전부터 셔터를 누르지 못한다. 그의 육체가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손수 몸을 움직여 폐교를 개조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만들어 2002년 여름에 문을 열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지금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 있다. 그 경계에서 그는 말한다. “행복과 즐거움보다는
불행과 슬픔이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고.
배국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