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악
[한라일보 2004/09/06] 오랜 기다림끝에 만난 섬의 속살

김영갑 사진달력 2005 ‘포에틱 제주제작

삽시간의 황홀파노라마 사진 12점 수록

 

한겨울 칼바람 부는 들녘으로 사람들과 함께 나서면, 시인들은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는 데 사업가는

감기걸린다며 서둘러 들녘을 떠나버린다. 시인이 평범한 일상을 언어로써 새롭게 표현하듯, 나도 눈에

익숙해진 평범한 풍경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오랜 시간 기다리며

사진을 찍는다.”제주에 홀려, 사진에 미쳐 세상의 모든 일을 미루어 두고 제주의 사진을 찍는데 매달려온

사람. 바로 사진가 김영갑이다. 1985년 이 섬에 정착한 그는 한라산과 마라도, 바닷가와 중산간,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을 사진에 담아왔다. 몇해전 불치의 병을 얻은 그이지만

폐교를 개조해 남제주군 성산읍 삼달리에서 사진갤러리를 운영하는 데 온 힘을 바치고 있다.도서출판

호미에서 나온 김영갑 사진달력 2005 ‘포에틱 제주는 그가 스무해동안 제주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포착한 20만여장의 사진 중 열두장을 골라 만들었다. 늘 지나다니던 길에서 보던 풍경들이지만

김영갑의 으로 잡아낸 그것들은 다르다.삽시간의 황홀로 불려지는 그의 사진은 극한의 가난과

고독을 견디며 숱한 기다림끝에 얻어진 것들이다. 도도한 오름, 광활한 들녘이 한번 보고 휑하니

지나치는 이들에게 제 속살을 쉽게 보일리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달력 한장 한장을 천천히

걷어나가는 동안 작가가 그려낸 외로움과 평화에 잠시 숙연해진다. 그것들은 은은하고 생생하거나,

붉거나 뜨겁고, 무겁고 아득하며, 휘황하고 가물가물하다.출판사측은 작가 특유의 파노라마 사진을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길쭉한 가로형을 채택했고, 사진 작품 원본의 색감을 고스란히 표현하기

위해 지질을 고급화했다. 다달이 사진에 곁들여진 글은 작가의 사진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2만원.

 

진선희기자 jin@hallailbo.co.kr